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4. 탈서울 : 서울 바깥에서 비로소 흐르는 가능성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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서울이라는 도시는 여러분에게 어떤 장소인가요? 

저는 지금껏 10년 정도 서울에 살았습니다. 대학생 때 6년 동안은 번화가인 신촌에서 지냈고, 중간에 잠깐 인천에 내려가 있다가 취직을 하면서 비교적 조용한 강동으로 동네를 옮겨 5년째 살고 있죠. 개인적으로 특별히 서울에 살고 싶다고 생각한 적은 없습니다. 살다보니 자연스럽게 서울에 살아야만 하는 상황이 갖춰졌던 거죠. 하지만 또 막상 고등학생 시절을 돌이켜보면, 나름대로의 로망은 있었던 것 같아요. 예쁜 가게, 카페, 극장, 미술관을 일상처럼 드나들고, 멋있는 사람들 속에 둘러싸여, 매일 매일 새로운 자극과 가능성을 마주하며 나아가는 삶…. 이런 미래를 꿈꾸게 하는 에너지는, 서울 같은 대도시가 갖추고 있는 힘인 것 같습니다.

<응답하라 1994>, 2013


제가 딱 스무 살이 되던 해 방영했던 드라마 <응답하라 1994>는 전형적인 '서울에 대한 로망'이 실현되는 과정을 보여줍니다. 지방에서 올라온 아이들이 낯선 도시에서 고군분투하다가, 서로 우정을 쌓고 사랑도 찾으며 각자의 꿈을 향해 나아가는 서사를 그려내죠. 이 이야기 속 인물들의 삶의 중심에는 '꿈'과 '사랑', '잘 살아갈 수 있을 거라는 믿음'이 깔려 있습니다. 하지만 제가 겪은 서울에서의 삶은 조금 달랐습니다. 순수한 낭만과 사랑을 중심에 두고 살아가려 하면 오히려 외로워지는 도시였달까요. 제가 느꼈을 때 서울 사람들의 삶의 중심에 자리하고 있는 건 그런 것들보다는, 행복해지지 못할 것 같다는 불안과 멈추지 않는 야망이었습니다. 

서울은 확실히 즐길 것도 얻을 것도 많은 도시입니다. 하지만 오래 지내다 보면 도시 전체를 감싸안고 있는 불안 때문에 자꾸만 일상 속에 피로감이 스며듭니다. 그럼에도 주변을 보면 '서울을 벗어나기 싫다'고 말하는 사람들이 많습니다. 서울에서만 살아왔기 때문에 떠나기 싫다는 사람도 있고, 어렵게 서울에 자리잡았기 때문에 지방에 돌아가기 싫다는 사람도 있습니다. 이런 걸 보면 서울에 대한 선호는 출신보다는, 성향의 영향이 더 크다는 느낌이 듭니다. 그에 비해 저는 '언젠가 서울을 벗어나고 싶다'는 생각을 점점 더 자주 하게 됩니다. 서울에서 얻을 수 있는 것들보다는 서울에서 잃을 수밖에 없는 것에 갈수록 마음이 쓰이는 것 같아요.
 


 
최근, 서울 바깥의 삶에 대해 좀 더 깊게 생각해보게 된 계기가 있었습니다. 브로드컬리에서 출간한 『서울을 떠난 3년 이하 이주민의 가게들』이라는 책이었죠.

브로드컬리는 한국 곳곳에 있는 로컬샵을 연구하는 잡지로, 작은 가게를 시작한 젊은 자영업자들을 취재하는 '3년 이하 시리즈'로 잘 알려져 있습니다. 2018년부터 2020년까지 총 다섯 개의 호를 발행한 뒤 한동안 소식이 없다가, 올해 3월 무려 6년 만에 신간을 발행했는데요. 편집장의 인터뷰를 읽어보니, 이번 호 주제인 '서울을 떠난 사람들' 중에서 적절한 인터뷰이를 찾는 게 생각보다 오래 걸렸다고 합니다. 많은 노력을 기울여 인터뷰이를 선정한 만큼, 이 책에는 삶의 모양에 대해서 오랜 시간 고민해 온 사람들만이 말할 수 있는 단단한 이야기가 담겨 있었습니다.

표지 이미지 ⓒ 브로드컬리,『서울을 떠난 3년 이하 이주민의 가게들』(브로드컬리 편집부, 2025)


책은 쉽게 쓰여 있어서 정말 금방 읽힙니다. 그리고 자연스럽게 '나 또한 언젠가 이런 선택을 할 수 있을까?' 라는 질문을 스스로에게 던지게 되어요. 흥미로웠던 건, 서울 바깥의 삶에 대해 묻다가도 결국에 다시 서울에 대한 이야기를 끌어내는 인터뷰 방식이었어요. '서울을 떠난 이유', '서울을 떠난다고 했을 때의 주변의 반응', '서울에 대한 생각' 등을 짓궂다 싶을 정도로 계속 캐묻기도 하고요. 서울에 살고 있는 독자의 입장에서는 그 모든 질문들이 사유를 구체화하는 데 도움이 되었습니다. 서울에 사는 것이 가장 표준적이고 이상적인 삶으로 여겨지는 사회에서 서울을 떠나려면, 결국엔 서울과 나와의 관계를 어떻게 규정하느냐가 시작점일 테니까요. 

책을 다 읽은 후, 앞으로 서울을 떠날까 말까 판단하기 위해서는 다음 세 가지 질문에 대한 답을 내려야 한다고 느꼈습니다. 


첫 번째 질문. 나에게 '공간(집)'은 어떤 가치를 지니는가?


서울에서 살기 힘든 가장 큰 이유를 꼽으라면 단연 부동산 가격일 것입니다. 서울에서 내 집 - 그것도 거실과 부엌, 침실, 수납 공간 등이 제대로 갖춰진 집다운 집 - 을 마련하려면 수십 년간 저축을 하거나 대출을 갚아야 합니다. 자영업을 할 경우 가게에 드는 비용 또한 만만치 않습니다. 매출의 상당 부분을 월세로 지불해야 하니, 이윤을 남기려면 더 많이, 더 효율적으로 상품을 팔아야 하죠. 그런 면에서 지방의 좋은 점 중 하나는, '좁고 비싼 공간'으로부터 해방된다는 점이 아닐까 싶습니다. 지방으로 여행을 다니다 보면, 확실히 공간이 전반적으로 넓을 뿐 아니라 그 안에서의 시간 또한 비교적 느긋하게 흐르는 느낌이 듭니다.

만약 누군가에게 공간이 성취나 투자의 대상이라면, 힘들더라도 부동산 가치가 높은 서울에서 터를 잡는 것이 현명한 선택일 것입니다. 하지만 저에게 공간은 성취의 대상보다는 존재의 장소에 가깝습니다. 특히 집은 나 자신의 모습을 회복하는 정서적 거점 같은 곳이고요. 그런 면에서 서울의 공간들은 어쩐지 제 존재 방식을 한정짓는 느낌이 듭니다. 좁은 면적에 많은 의미와 기능이 빽빽하게 담겨 있다 보니, 공간이 사람에게 맞춰 변화하지 못하고 그 안을 살아가는 개개인의 이야기는 자꾸만 희미해집니다. 이런 감각이 쌓이다보니 답답함도 커집니다. 살아 있는 삶을 품어주는 공간을 찾거나 만들려면, 서울을 떠나야 하는 게 아닌가 생각하게 되어요.

공간이 남는 게 좋다. 서울의 원룸에선 공간이 늘 부족해서 생필품이 아니면 잘 사지 않았다. 이젠 집에 취향을 반영할 여지가 생긴다. 읽던 책을 책꽂이에 꽂지 않고 뒤집어서 둘 수 있고, 좋아하는 물건을 서랍에 넣지 않고 보이는 곳에 진열할 수 있다. 요리 도구도 많아졌고 접시 종류도 늘어났다. 집의 넓이가 불편과 편함을 넘어 하루를 보내는 시간의 모양에도 영향을 주는 걸 느낀다. 

- 나락서점 박미은 대표, 『서울을 떠난 3년 이하 이주민의 가게들』, p.102

고정비가 높아질수록 매출 부담도 커질 수밖에 없다. 만들고 싶었던 공간의 모습보다 최대한 많이 파는 방향으로 가게 되기가 쉽다. 예를 들어, 난 와인을 좋아하는데 위스키가 유행이라고 하면 위스키를 메뉴에 넣게 되는 거다. 
스스로 즐기지 않는 음식을 파는 요리사가 행복하기 어렵겠고, 식당을 잘 운영하긴 더 어려울 거다. 월세가 낮다는 건 유지비의 개념만이 아니라, 운영자의 가치관을 공간에 반영하기 위한 비용이 낮다는 말이기도 할 거다. 싫은 건 빼고 좋은 건 유지할 수 있는 여유를 확보할 수 있게 된다. 

- 보배진 이진우 대표, 『서울을 떠난 3년 이하 이주민의 가게들』, p.369

 

두 번째 질문. 나에게 있어 '안정감'을 주는 생활의 조건은 무엇일까?

서울은 살기 힘든 곳이지만, 적당한 일자리만 찾으면 소위 말하는 '안정적인 삶'을 꾸릴 수 있는 곳이기도 합니다. 취직이 어려워졌다고는 하지만, 일단 취직에 성공해서 고정 수입을 확보하고 나면 그 이후의 생활은 비교적 수월합니다. 마트, 병원, 각종 생활 시설에 쉽게 접근할 수 있고, 사람도 만나고 싶으면 얼마든지 만날 수 있죠. 무엇보다, 나 말고 다른 사람들도 비슷한 방식으로 살아가고 있다는 데에서 오는 안정감을 누릴 수 있습니다. 낮에는 일하고, 저녁에는 돈을 쓰고, 주말에는 여가를 즐기는 평범한 생활 속에서, '주류'에 속해 있다는 소속감과 내 가치를 더 이상 증명하지 않아도 된다는 안도감을 얻을 수 있죠.

저 역시 지금은 이런 전형적인 삶의 패턴이 주는 안정감에 기대어 살아가고 있습니다. 그러면서도 동시에, 이러한 경제적·물리적 안정감이 꼭 심리적 안정으로 이어지는 건 아니라는 것도 실감하고 있습니다. 무언가 일상이 불만족스러울 때마다, 나는 언제 심적으로 안정적이었나 돌이켜봅니다. 스스로 의미를 두는 일에 오롯이 몰입했던 시기, 생각하고 싶은 문제에 대해서 마음껏 사유했던 시기 등이 떠오릅니다. 이를 현재 루틴 속에 끼워 넣어 보려고 애써 보지만, 회사를 다니다 보면 자꾸 흐름이 끊기거나 에너지가 부족해지는 상황을 맞닥뜨립니다. 그럴 때마다 내가 마련한 '안정의 조건'이 오히려 나를 구속하고 있는 건 아닐지 자문하게 됩니다.

인터뷰를 읽으며, 지방이 줄 수 있는 또 다른 성격의 안정감에 대해서도 생각해보게 되었습니다. 서울 사람들과는 반대로, 지방에서 사는 사람들에게는 전형적인 삶의 패턴을 더 이상 유지하지 않아도 된다는 데에서 오는 안정감이 있는 것 같았습니다. 인터뷰이들 모두 저마다 경제적인 고민을 안고 있음에도 불구하고, 원했던 형태의 일상을 유지할 수 있다는 것에서 큰 심리적 안정감을 느끼는 듯했습니다. 앞으로 서울과 서울 바깥 중 어디에서 더 안정적인 삶을 살 수 있을지 알기 위해서는, 진정한 안정이란 무엇일까 - 흔들림이 없는 상태인가, 아니면 내 마음껏 흔들릴 수 있는 여지일까 - 하는 질문을 생활 속에서 계속 던져봐야 할 것 같습니다. 

안정적인 삶의 모습이 사람마다 다를 거다. 예측 가능한 삶이 누군가에겐 안정적일 수 있겠고 누군가에겐 오히려 지속하기 까다로운 삶일 수도 있을 거다. 나로서는 내일 무슨 일이 생길지 몰라서 걱정되고 또 그만큼 기대가 되는 삶이, 꾸준하게 최선을 다하기에 유리한 안정적인 삶의 모습이었던 것 같다. 

- 오피스 제주 박성은, 박현주 대표,『서울을 떠난 3년 이하 이주민의 가게들』, p.294

내면에 집중하기 유리한 것 같다. 서울 같은 대도시는 도시 자체의 존재감이 워낙 크게 느껴진다. 도시가 사람을 가만두질 않는다. 매주마다 새로운 전시가 열리고, 새로운 공간이 문을 연다. 들리는 것도 많고 보이는 것도 많다. 
(중략)
하지만 대도시의 즐길 거리는 돈을 써야 얻을 수 있는 형태가 많다. 행복을 소비에 의탁하게 되기가 아무래도 쉬운 것 같다. 남들만큼 소비하기 위해서는 남들만큼 벌어야 할 텐데, 돈 버는 게 마음대로 되는 것이 아니니까 스트레스를 받기도 쉽다. 이런 면에서 날 가만히 내버려두는 소도시가 그리웠던 것 같다. 

- 라이픈 커피 김이연, 박태웅 대표,『서울을 떠난 3년 이하 이주민의 가게들』, p.171-173

 
세 번째 질문. 서울이 주는 '다양한 자극과 기회'는 여전히 필요할까?

기회가 많다는 점은 서울이 지닌 아주 분명한 장점입니다. 기회뿐만 아니라 서울에는 모든 게 많습니다. 먹을 것, 살 것, 할 것까지 새로운 자극이 도시 곳곳에 펼쳐져 있죠. 우리나라는 특히나 이런 대도시가 사실상 서울 하나뿐이어서, 시간이 갈수록 경제적·문화적 자본이 더욱 서울에 몰리는 것 같아요. 저 역시 20대 때는 이런 풍요로움을 한껏 누렸는데요. 언젠가부터 그런 자극들이 저를 성장시키지 못하고 헛돈다는 느낌이 듭니다. 자극의 양에 비해서 그 자극의 종류가 다양하지 않다는 느낌도 들고요. 아마도 투자 자본의 규모가 점점 커짐에 따라 소수보다는 다수의 대중을 타겟팅하는 서비스의 비중이 많아져서 그런 게 아닌가 싶어요. 

그렇지만 서울이 주는 '다양한 자극과 기회'가 이제는 전혀 필요 없냐고 묻는다면, '네' 라고 선뜻 답하지는 못할 것 같아요. 대도시의 매력을 뒤로 하고 미련 없이 떠나도 될 만큼, 충분히 많은 사람을 만나봤을까? 충분히 다양한 경험을 해봤을까? 아직 잘 모르겠고, 바로 이 지점에서 가장 큰 머뭇거림이 생깁니다. 아직 "할 만큼 했다" 는 감각까지는 닿지 못한 거겠죠. 그래서인지 인터뷰를 읽으며, 원하는 것이 분명해서 이를 지켜가기 위한 장소로서 지방을 선택했다고 말하는 사람들에게 부러움을 느꼈습니다. 저는 그런 명확한 방향성을 찾지 못했기 때문에, 아직은 다양한 것들이 밀집되어 있는 도시를 부유하는 시간이 필요한 것 같기도 합니다. 

얻을 것이 많은 만큼 감당할 숙제도 많은 도시가 서울 같다. 다양한 선택지를 탐색하기엔 서울만 한 곳이 없겠지만, 탐색을 충분히 마쳤고 삶의 방향이 분명해졌다면 서울에 계속 사는 편이 나을지 한 번쯤 점검해 보는 것 또한 자연스럽다고 생각한다. 서울에서 사는 쪽이 유리한 삶도 있겠고, 그렇지 않은 삶도 있을 거다. 서울에 굳이 머물러야 할 이유가 없다면 서울의 무거운 숙제를 감당할 필요도 없을 거다. 

- 치치하하 송한철 대표,『서울을 떠난 3년 이하 이주민의 가게들』, p.69

취업이 아니라 내 일을 해 보려는 경우에도 서울보다 유리한 면이 많다. 서울에 물론 기회가 많겠지만 서울엔 분야마다 전문가도 많다. 초심자가 두각을 보이기 어렵다. 여기서는 어떤 일을 하고 있다는 자체로 고유성을 부여받는 때가 많다. 같은 일을 하는 사람이 잘 없으니까 관련된 기회가 금세 연결된다. 기회가 꼭 많아야 기회를 얻는 것도 아니라는 걸 느낀다. 

- 남쪽집 이준민 대표,『서울을 떠난 3년 이하 이주민의 가게들』, p.497

<서울을 떠난 3년 이하 이주민의 가게들>을 통해 엿본 이들의 삶은, 서울 사람들의 삶 못지 않게 치열해 보였습니다. 더욱 밀도 있고 첨예한 고민들로 하루가 꽉꽉 채워져 있는 듯했고, 매일 매일 자신에게 질문을 던지며 조용한 싸움을 하고 있는 것으로 보였습니다. 결코 쉬워보이지 않았지만, 그 안에는 분명 나름대로의 질적인 여유가 있는 것 같았습니다. 자신만의 기준을 중심에 두고 하루의 시간을 자기 페이스대로 운용하며 사는 사람들, 인생에서 꼭 지키고 싶은 것들이 일상 속에 뿌리내릴 수 있는 구조를 만들어낸 사람들이었죠.  

저는 가까운 미래에 서울을 떠날 생각은 없습니다. 앞으로도 서울이 주는 가능성을 누리고, 또 동시에 서울에 잡아먹히지 않기 위해 애쓰는 삶을 당분간 살아갈 것 같아요. 하지만 동시에 서울 바깥에서 삶을 일구어나가는 사람들도 계속 들여다보면서, 탈서울의 선택지 역시 마음 한켠에 담아두며 지낼 것 같습니다.  

여러분은 지금 어떤 장소에 살고 있나요?
살고 싶은 곳을 찾으셨나요?


references

브로드컬리 공식 홈페이지
http://www.broadcally.com/
북저널리즘 | 브로드컬리 조퇴계 편집장 - 마감보다 중요한 가치를 좇는다 
https://www.bokjournalism.com/talks/450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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