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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 참을 수 없는 친절에 관하여 : 『이처럼 사소한 것들』, 클레어 키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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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Lionsgate / Small Things Like These (202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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여러분은 스스로를 ‘친절한 사람’이라고 생각하시나요?

저는 늘 막연히 좋은 사람이 되고 싶다고 생각하며 살지만, 실제로 이타적인 삶을 살고 있는 것 같지는 않습니다. 그보다는 대부분의 시간을 저 자신을 챙기는 데 쓰고 있는 것 같아요. 돈을 벌기 위해 일을 하고, 건강을 챙기기 위해 식사와 운동을 하고, 마음을 돌보기 위해 좋아하는 일을 하다 보면, 하루하루가 후루룩 지나가 버립니다. 

아마도 저만 그런 것은 아닐 거라 생각합니다. 사회가 우리에게 요구하는 일상의 틀 자체가, 자연스러운 이타심이 끼어들 여지를 잘 허락하지 않는 것 같아요. 안락한 삶을 지탱하는 데 하루치의 에너지를 거의 다 써야 하는데, 그 ’안락함‘의 기준은 자꾸 높아져만 갑니다. '나 한 사람 분의 하루‘를 꾸리는 데만도 매일이 빠듯하니, 그 바깥까지 좀처럼 에너지가 뻗지 못합니다.

이런 생각을 하다 보면, 평범한 사람에게 이타적인 행동이 얼마나 어려운 것인지 실감하게 됩니다. 클레어 키건의 중편 소설 『이처럼 사소한 것들 (원제 : Small Things Like These) 』은 바로 이 지점을 선명하게 짚어냅니다. 조용하고도 강렬한 이 이야기는, ‘이타심’이라는 감정이 가족을 책임져야 하는 한 가장에게 얼마나 위험한 것이 될 수 있는지 보여줍니다.

그러면서 우리에게 조용히 묻습니다. “당신은 정말로 누군가를 도울 수 있는 사람인가요?” 하고요.

표지 이미지 © 다산책방, 『이처럼 사소한 것들』 (클레어 키건, 2023)

 
*이하 내용에는 소설의 주요 전개 및 결말에 대한 스포일러가 포함되어 있습니다. 읽기 전에 참고해주세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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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야기의 주인공 '빌 펄롱' 은 아일랜드 소도시에 사는 한 남자입니다. 사랑하는 아내, 다섯 명의 딸과 작은 집에서 함께 살고 있죠. 그는 가족과의 안락한 삶을 이어가기 위해 마을 사람들에게 석탄을 팔며 매일을 성실히 살아갑니다.  

겉보기에는 무뚝뚝해 보이지만, 그의 내면에는 타인에 대한 다양한 감정이 생각보다 복잡하게 뒤엉켜 있습니다. 그는 미혼모였던 어머니와 자신을 거두어 준 미시즈 윌슨을 자주 떠올립니다. 그녀에게 감사함을 느낌과 동시에, 그녀의 도움이 없었다면 어떤 삶을 살아야 했을지 상상하며 섬뜩한 두려움을 느끼기도 합니다. 더 나쁜 상황으로 떨어지지 않고 스스로 한 가족을 꾸릴 수 있는 사람이 되었다는 데 안도하면서도, 자신보다 '운이 나쁜' 사람들을 볼 때면 설명하기 어려운 착잡함이 밀려옵니다. 그래서 기회가 되면 지나가는 이웃 아이에게 용돈을 쥐어주는 등 사소한 행동으로 알 수 없는 부채감을 해소하려 합니다.

직접적으로 묘사되지는 않지만, 그는 무의식적으로 미시즈 윌슨이 자신에게 그랬던 것처럼, 누군가에게 따뜻함을 베풀 수 있는 삶을 동경해왔던 것 같습니다. 그래서인지 딸들에게서 선한 마음씨가 엿보일 때마다 진한 기쁨을 느끼곤 합니다.

가끔 펄롱은 딸들이 사소하지만 필요한 일을 하는 걸 보며 - 성당에서 무릎 절을 하거나 상점에서 거스름을 받으며 고맙다고 말하는 걸 보면서 - 이 애들이 자기 자식이라는 사실에 마음속 깊은 곳에서 진한 기쁨을 느끼곤 했다. 

- 클레어 키건,『이처럼 사소한 것들』, 다산책방,  p20


그러나 세상에는 '운이 나쁜' 사람들이 너무 많고, 펄롱에게는 지켜야 하는 가족이 있습니다. 그는 힘든 사람들에 대한 생각이 떠오를 때마다 안타까움에 빠져들기보다는, 딸들이 그런 삶을 살지 않았으면 하는 마음에 집중합니다. 그런 그의 삶에는 늘 은은한 슬픔이 깔려 있습니다. 마치 자신에게 주어진 이 평온함이, 보이지 않는 누군가의 고통 위에 세워져 있다는 사실을 본능적으로 알고 있는 것처럼 말이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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어느 12월, 그는 한 수녀원에 석탄 배달을 갔다가, 이상한 장면을 목격하게 됩니다.

열린 문으로 무심코 들어선 작은 경당 안, 젊은 여자와 어린 여자 아이들 여럿이 지저분한 차림새로 바짝 엎드려 바닥을 문지르고 있었습니다. 펄롱이 의아해하던 중, 펄롱을 발견한 한 여자 아이가 갑자기 다가와서 말했습니다. "아저씨, 우리 좀 도와주세요. 강까지만 데려가 주세요." 하고요. 펄롱은 순간적으로 두려움을 느끼며 “난 그런 걸 해줄 수 있는 사람이 아니라”며 이를 거부했습니다. 이윽고 담당 수녀가 나타났습니다. 아이는 아무 일 없었던 듯 다시 엎드려 바닥을 닦았습니다. 펄롱은 수녀에게 석탄 값을 받은 후, 황급히 수녀원을 빠져 나왔습니다. 하지만 그의 머릿속에는 그 경당 안에서 본 장면이 너무나 강렬하게 각인되었습니다. 

펄롱은 그날 밤, 심란한 마음을 아내 아일린에게 털어놓습니다. 그러나 돌아오는 건 "모른 척해야 한다"는 냉정한 반응 뿐이었습니다. 두 사람은 이 주제 앞에서 서로에게 아득한 거리감을 느낍니다. 아일린은 수녀원에서 일어나는 폭력에 무력감을 느끼는 것을 넘어 이를 무감각하게 받아들입니다. 도울 방법이 없기 때문에 신경을 끄는 것만이 답이라고 말하죠. 그리고 그렇게 하지 못하는 펄롱을 보며 '세상 물정을 잘 모른다' 고 생각합니다. 펄롱은 이러한 아일린의 시선을 느끼며 말문을 닫습니다. 그리고 미시즈 윌슨이 아니었다면 비슷한 종류의 폭력에 노출될 수 있었던 어머니의 인생을 떠올립니다.

다음은 펄롱과 아일린이 대화를 나누는 장면입니다. 

"사람이 살아가려면 모른 척해야 하는 일도 있는 거야. 그래야 계속 살지."
"당신 말이 틀렸다는 게 아냐."
"틀리고 말고 할 문제가 아니라. 당신은 너무 속이 물러. 그래서 그래. 주머니에 잔돈이라도 생기면 다 나눠 주고 -"
"오늘 뭣 때문에 화난 거야?"
"아무것도 아냐. 그냥 당신이 모르는 것 같아서. 당신은 딱히 어려움을 모르고 컸잖아."
"무슨 어려움 말야?"
”그게, 세상에는 사고를 치는 여자들이 있어. 당신도 그건 잘 알겠지.“
강한 타격은 아니었으나, 그때까지 아일린과 같이 살면서 그런 말을 들어보기는 처음이었다. 뭔가 작지만 단단한 것이 목구멍에 맺혔고 애를 써보았지만 그걸 말로 꺼낼 수도 삼킬 수도 없었다. 끝내 펄롱은 두 사람 사이에 생긴 것을 그냥 넘기지도 말로 풀어내지도 못했다.
"당신한테 그렇게 말하면 안 되는 건데." 아일린이 한 걸음 물러섰다. ”그렇지만 우리가 가진 것 잘 지키고 사람들하고 척지지 않고 부지런히 살면 우리 딸들이 그 애들이 겪는 일들을 겪을 일은 없어. 거기 있는 애들은 세상에 돌봐줄 사람이 한 명도 없어서 그런 거야. 그 애들 부모는 애들을 멋대로 풀어놨다가, 문제가 생기니까 모른 척 등을 돌려버렸겠지. 자식이 있는 사람이 그렇게 무심해서는 안 되는 건데."
"하지만 만약 우리 애가 그중 하나라면?" 펄롱이 말했다.
"내 말이 바로 그거야.” 아일린이 다시 일어나 앉으며 말했다. “걔들은 우리 애들이 아니라고.”

- 클레어 키건,『이처럼 사소한 것들』, 다산책방,  p56-57


펄롱의 마음을 따라가다보면 아일린의 현실적인 말은 외로움이 느껴질 정도로 냉담하게 느껴집니다. 그렇지만 한편으로 펄롱과 아일린은 각각 우리 안에 존재하는 두 개의 목소리를 대변하는 것 같기도 합니다. "만약 우리 애가 그 중 하나라면?" 이라고 물으며 타인의 불행에 다가서려는 목소리와, 그 앞에서 "걔들은 우리 애들이 아니라고."라고 다그치며 선을 그으려는 목소리. 대부분의 경우, 우리는 결국 두 번째 목소리를 따라 누군가의 불행을 지나쳐 갑니다. 펄롱 또한 아일린의 말에 반감을 느꼈지만, 결국 아무 행동도 하지 못하고 크리스마스 주를 맞이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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크리스마스를 사흘 앞둔 일요일, 또다시 수녀원에 석탄을 배달하러 간 펄롱은 그곳에서 한 소녀를 마주합니다.

머리가 엉망으로 깎인 채 석탄 광에 방치되어 있는 어린 여자 아이였습니다. 소녀의 모습을 보건대, 하룻밤 새 이곳에 가두어져 있었다는 걸 알 수 있었습니다. 펄롱은 또다시 이 상황에 두려움을 느꼈지만 이번엔 '본능적으로' 소녀의 몸을 자신의 외투로 감싸줍니다. 몇 마디 말을 주고 받는 과정에서 몇 주 전 아기를 낳은 소녀라는 것을 알게 되고, 이에 단단한 분노같은 것을 느낍니다. 

그러던 중 수녀원장이 이들을 발견합니다. 수녀원장은 두 사람을 자신의 방으로 데려간 뒤, 다른 수녀에게 아이를 데려가 씻기라고 합니다. 그리고 펄롱과 대화를 시도합니다. 수녀원은 펄롱이 사는 도시에서 꽤 큰 권력이 있었고, 특히 펄롱의 딸들이 앞으로 다녀야 할 학교를 운영하고 있었습니다. 그 힘을 이용해, 수녀원장은 펄롱을 협박합니다. 이 일을 발설할 경우, 펄롱의 아이들에게 불이익을 주겠다는 식의 말을 돌려서 건넵니다. 흔들리지 않으려 애쓰는 펄롱에게, 수녀원장은 아일린에게 전해주라며 돈 봉투까지 건넵니다. 펄롱은 수녀원을 나가는 길에 다시 아이를 마주칩니다. 소녀에게 다가가 "도움이 필요하면 언제든 나를 찾으라"고 말하지만, 결국엔 소녀를 두고 나오게 됩니다.

이후 펄롱은 계속해서 괴로운 마음에 시달립니다. 크리스마스 이브, 석탄을 배달하러 방문한 이웃과 소소한 선물을 주고받으며, 그는 '주고 받으면서 관계를 유지할 수 있다는 것' 자체가 일부 사람들에게만 주어진 특권이라는 것을 깨닫습니다. 

좋은 사람들이 있지, 펄롱은 차를 몰고 시내로 돌아오면서 생각했다. 주고받는 것을 적절하게 맞추어 균형 잡을 줄 알아야 집 안에서나 밖에서나 사람들하고 잘 지낼 수 있단 생각을 했다. 그러나 이런 생각을 하는 순간 이런 생각을 한다는 것 자체가 특권임을 알았고 왜 어떤 집에서 받은 사탕 따위 선물을 다른 더 가난한 집 사람들에게 주지 않았을까 하는 생각이 들었다. 늘 그러듯 크리스마스는 사람들한테서 가장 좋은 면과 가장 나쁜 면 둘 다를 끌어냈다.  

- 클레어 키건,『이처럼 사소한 것들』, 다산책방,  p102-103                                     


남에게 줄 것이 아무것도 없는 사람, 무언가를 받아야만 겨우 '생존'할 수 있는 사람(소녀)에 대한 생각이 그의 머리를 떠나지 않습니다. 일을 마친 후 펄롱은 집으로 돌아가지 않고 도시의 이곳 저곳을 배회합니다. 단골 식당에서 저녁 식사를 하고, 크리스미스 분위기가 물씬 풍기는 거리의 상점을 구경합니다. 이발소에서 머리를 깎고, 아일린에게 줄 크리스마스 선물을 삽니다. 그리고 나서 그는 무언가에 홀린 듯 수녀원으로 발길을 옮깁니다. 언덕을 올라, 석탄 광의 빗장을 당기고, 소녀의 이름을 부릅니다. 소녀의 이름은 돌아가신 펄롱 어머니의 이름과 같은 '세라'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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소설은 펄롱이 소녀를 집으로 데려간 뒤 무슨 일이 있었는지는 이야기해주지 않습니다. 다만, 소녀와 함께 수녀원을 나와 걷는 동안 펄롱의 마음에 일어난 변화만을 묘사할 따름입니다. 소설을 앞에서부터 꼼꼼히 읽어나가다보면, 이 대목에서 현실에서 판타지로 급격히 도약하는 듯한 벅차오름 같은 것이 느껴집니다.

두 사람은 계속 걸었고 펄롱이 알거나 모르는 사람들을 더 마주쳤다. 문득 서로 돕지 않는다면 삶에 무슨 의미가 있나 하는 생각이 들었다. 그 나날을, 수십 년을, 평생을 단 한 번도 세상에 맞설 용기를 내보지 않고도 스스로를 기독교인이라고 부르고 거울 앞에서 자기 모습을 마주할 수 있나? 
아이를 데리고 걸으면서 펄롱은 얼마나 몸이 가볍고 당당한 느낌이던지. 가슴속에 새롭고 새삼스럽고 뭔지 모를 기쁨이 솟았다. 펄롱의 가장 좋은 부분이 빛을 내며 밖으로 나오고 있는 것일 수도 있을까? 펄롱은 자신의 어떤 부분이, 그걸 뭐라고 부르든 -거기 무슨 이름이 있나?- 밖으로 마구 나오고 있다는 걸 알았다. 대가를 치르게 될 테지만, 그래도 변변찮은 삶에서 펄롱은 지금까지 단 한 번도 이와 견줄 만한 행복을 느껴본 적이 없었다. 갓난 딸들을 처음 품에 안고 우렁차고 고집스러운 울음을 들었을 때조차도. 

- 클레어 키건,『이처럼 사소한 것들』, 다산책방,  p119-120


저는 펄롱과 가족에게 어떤 벌어질까 걱정이 되면서도 친절을 베푼 후 행복에 겨워하는 그가 부러워지기도 했습니다. 동시에 이 행복의 감각이 어쩐지 비현실적으로 느껴져서, 소설이 아닌 현실의 빌 펄롱은 결국 소녀를 잊었을지도 모른다는 생각도 스쳤습니다. 낯선 누군가를 위해 이토록 선명한 용기를 내는 일이 현실에서 가능한 일일까? 자연스레 스스로에게 묻게 되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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저는 이야기 속 빌 펄롱처럼 낯선 이에게 아무 대가 없이 도움의 손길을 건넨 적은 없는 것 같습니다. 그러나 빌 펄롱처럼 어떤 이가 다른 이에게 부당한 폭력을 가하는 모습을 보면서 참을 수 없는 분노를 느꼈던 적은 있습니다. 그때 저는, 그 폭력을 멈추기 위해 이 뭐든 해야만 한다는 강한 충동을 느꼈지만, 펄롱처럼 결과적으로 의미 있는 행동을 하지는 못했습니다. 그때 할 수 있었던 건, '그 가해자로부터 나 자신을 지키는 것'과 '피해자에게 그 상황을 벗어날 수 있다면 벗어나라고 호소하는 것' 정도였습니다. 그때 느꼈던 자책감과 무력감은 제 안에 꽤 큰 상처를 남기기도 했습니다. 

지금 생각해보면, 그때 그 상황 또한 수녀원과 비슷하게 어떠한 시스템으로 인해 지속적인 폭력이 일어나고 있는 것이었기에, 실제로 개인이 선택할 수 있는 것은 그 구조에서 '빠져나오는' 것뿐이었습니다. 그리고 이러한 탈출을 감행할 수 있는 사람은, 경제활동을 일시적으로 멈추거나 미룰 수 있는 사람뿐이었습니다. 누가 옳고 누가 잘못했는지와는 별개로, 사람마다 고를 수 있는 선택지에는 한계가 있기 마련입니다.  

그래서 수녀원이라는 권력 앞에서 ‘친절함’을 선택을 한 펄롱을 보며 해방감을 느끼면서도, 그와 소녀에게 안온한 미래가 펼쳐질 리 없다는 막막함이 함께 느껴지는 것입니다. 소녀를 데려온 펄롱과 아일린은 계속해서 삶을 함께 꾸릴 수 있을까, 일곱 명이 살아도 좁은 집에 소녀가 편안히 몸을 누일 곳이 있을까, 펄롱은 소녀의 손을 계속 잡고 있을 수 있을까, 하는 걱정들이 생각보다도 더 무거운 감각으로 다가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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부당한 폭력 앞에서 그 누구도 돕지 못했던 20대의 저는 “똑같은 상황이 다시 온다면, 그때는 정말 타인을 제대로 도울 수 있는 힘을 갖고 있었으면 좋겠다”고 생각하며, 그것이 어른이 되는 길이라 생각했습니다. 하지만 지금의 저는 오히려 세상 곳곳에 존재하는 악과 폭력을 당연시한 채, 조금은 무감하게 살아가는 어른이 된 듯합니다. 이제 누군가가 권력을 이용해 다른 이를 괴롭히는 모습을 봐도 경악하기보다는 피로감을 느낍니다. 사건을 자세히 들여다보지 않으려 하고, 특정 인물에 대한 감정 이입을 최대한 절제하며, 분노하지 않기 위해 나의 소박한 삶에 집중하곤 합니다. 남을 돕는 일보다는 일단 저 자신을 지키는 것이 우선이 되어버린 것이겠죠.

그렇지만 한 편으로는, 빌 펄롱이 결국 '세라'라는 소녀를 만난 순간 참지 못하고 손을 내밀었던 것처럼, 저에게도 ’지나칠 수 없는‘ 순간이 찾아오길 바라고 있는 것 같기도 합니다. 살다보면, 가끔 왠지 특별하게 마음이 쓰이는 사람이 생기기도 하잖아요. 그게 빌 펄롱에겐 '세라'였고, 미시즈 윌슨에겐 빌 펄롱과 그의 어머니였을 것이고요. 미시즈 윌슨이 건넨 사소한 따뜻함이 빌 펄롱이라는 사람을 만들고, 그의 친절함이 또다시 세라의 삶을 구한 것처럼, 평범한 우리에게도 감당하고 싶어지는 인연이 찾아올지도 모른다는 생각이 듭니다. 그때 나는 지금보다 용감하고 민감할 수 있을까, 자신이 있는 건 아니지만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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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토록 사소한 것들』은 어떤 사람이 친절을 베풀기 위해서는 경제적 여유가 필요하다는 사실을 부정하지 않습니다. 아일린은 펄롱에게, 미시즈 윌슨이 부유했고 따로 부양해야 할 가족이 없었기에 펄롱과 어머니를 거둘 수 있었던 것이라 강조합니다. 저는 이 대사에 서운함을 느끼면서도 한편으로 맞는 말이라고 생각했습니다. 돈은 중요합니다. 실제로 저는 관계를 더 여유롭게 대하고 싶어서 돈을 벌기 시작했습니다. 사회 생활을 할수록 친절에 꽤 많은 비용이 든다는 것을 더욱 실감하고 있고요. 나이를 먹을수록 돈으로 얻을 수 있는 행복의 비중이 커지기 때문에, 아무리 누군가를 아낀다 해도 돈 없이는 해줄 수 있는 일이 많지 않다고 느낍니다. 

하지만 펄롱이 수녀원의 빗장을 연 그 용기는 돈에서 나온 것이 아닙니다. 그가 더 가난했다면 용기를 내기 더 어려웠을 수 있겠지만, 돈이 더 많았다고 해서 쉬웠을 것 같지는 않습니다.

클레어 키건은, '나는 다른 누군가를 도울 수 있는 사람이다' 라는 자각은, 돈이나 힘에서 오는 것이 아니라 '아주 약하고 별 볼일 없던 시절에 누군가에게서 받았던 선의'에서 비롯된다는 걸 이야기를 통해 말해줍니다. 누구의 도움을 받지 않고 잘 살아갈 때 얻는 자존감도 물론 있지만, 누군가의 진정한 도움을 받았을 때 생기는 가치감이 분명히 있는 것 같습니다. 그 순간, '나는 친절을 받을 만큼 가치 있는 존재'라는 감각을 느끼고, 그 위에 '나도 누군가를 도울 수 있는 사람'이라는 정체감을 세울 수 있는 것이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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저에게는 그런 '선의'의 기억이 새겨져 있을까요? 있는 듯하면서도 없는 것 같기도 하고, 구체적으로 손에 잡히지는 않습니다. 어쩌면 너무 사소한 것들이어서 어떤 기억이라고 명확하게 정의할 수 없는 것인지도 모릅니다. 여러분은 어떠신가요? 나는 도움을 받을 만한 존재라는, 혹은 누군가에게 친절을 베풀만한 존재라는 데서 오는 행복한 기분을 느껴본 적이 있으신가요? 

끝으로 소설의 마지막 문장들을 인용합니다. 이 책의 제목이 왜 『이처럼 사소한 것들』인지를 말해주는 아름다운 서술입니다. 자신의 선택 위에서, 앞으로 펼쳐질 고통을 결연하게 바라보는 펄롱의 마음이 느껴집니다. 펄롱이 현실에서 소녀의 삶을 끝내 구하지 못할지라도, 소녀의 삶에는 가장 엉망이었던 순간 자신을 따뜻한 외투로 덮어준 선의의 기억이 새겨졌을 것입니다. 

펄롱은 미시즈 윌슨을, 그분이 날마다 보여준 친절을, 어떻게 펄롱을 가르치고 격려했는지를, 말이나 행동으로 하거나 하지 않은 사소한 것들을, 무얼 알았을지를 생각했다. 그것들이 한데 합해져서 하나의 삶을 이루었다. 미시즈 윌슨이 아니었다면 어머니는 결국 그곳에 가고 말았을 것이다. 더 옛날이었다면, 펄롱이 구하고 있는 이가 자기 어머니였을 수도 있었다. 이걸 구하는 것이라고 할 수 있다면. 펄롱이 어떻게 되었을지, 어떻게 살고 있을지는 아무도 모르는 일이었다.

최악의 상황은 이제 시작이라는 걸 펄롱은 알았다. 벌써 저 문 너머에서 기다리고 있는 고생길이 느껴졌다. 하지만 일어날 수 있는 최악의 일은 이미 지나갔다. 하지 않은 일, 할 수 있었는데 하지 않은 일 - 평생 지고 살아야 했을 일은 지나갔다. 지금부터 마주하게 될 고통은 어떤 것이든 지금 옆에 있는 이 아이가 이미 겪은 것, 어쩌면 앞으로도 겪어야 할 것에 비하면 아무것도 아니었다. 자기 집으로 가는 길을 맨발인 아이를 데리고 구두 상자를 들고 걸어 올라가는 펄롱의 가슴속에서는 두려움이 다른 모든 감정을 압도했으나, 그럼에도 펄롱은 순진한 마음으로 자기들은 어떻게든 해나가리라 기대했고 진심으로 그렇게 믿었다. 

- 클레어 키건,『이처럼 사소한 것들』, 다산책방,  p120-12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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