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여름의 열기가 가라앉고 차분한 가을이 찾아왔습니다.
여러분은 긴 여름을 어떻게 보내셨나요?
저에게 올해 7-9월은 알 수 없는 정서적 욕망으로 마음이 가득 차오르는 시기였습니다. 마음은 세상을 향해 고개를 드는데, 어디로 향하려는 건지 방향은 좀처럼 잡히지 않았어요. 내면에서는 ‘이제 뭔가 할 수 있을 것 같다‘는 막연한 에너지가 피어올랐는데, 그 에너지를 집중할 대상을 찾지 못해 답답해지기도 했습니다.
그래도 활기찬 감정이 마음 속에서 조금씩 꿈틀대는 것이 반가웠습니다. 그래서 그 에너지가 어디로 향하든, 일단 따라가보기로 했어요. 뭔가가 사고 싶어지면 돈을 좀 쓰더라도 사 보고, 해보고 싶은 일이 생기면 힘을 아끼지 않고 그 일에 몰두했습니다. 어떤 날은 해야 할 일을 미루면서 하고 싶은 일로 시간을 꽉꽉 채워버리기도 했고요.
이번 글에서는 그 시간을 천천히 되짚어보려 합니다. 막연했던 에너지라도, 그 흔적을 조금이나마 구체적으로 기록해두기 위해서요.
정서가 원하는 것 1 : 바깥을 향해, 느슨하게 움직이고 싶다
정서적 에너지가 차오르면서 가장 먼저 느껴진 건, 바깥에 관심이 간다는 것이었습니다. 회사에 가도 다른 사람들을 자꾸 바라보게 되고, 주변에 무슨 일이 일어나고 있는지 호기심이 일었어요. 워낙에 극-내향인인지라, 이렇게 외부로 에너지가 향하는 게 굉장히 오랜만이었습니다.
그와 함께 전반적으로 느슨해지고 싶은 기분이 들었습니다. 쇼핑을 할 때는 적당히 구겨져도 괜찮은 루즈한 옷이나, 아무거나 이것저것 챙겨도 괜찮은 큼직한 가방이 끌렸어요. 잠시 남해로 여름 휴가를 갔을 때에도, 바닷가에서 예쁜 사진을 찍는 것보다 몸을 담그고 물결을 따라 이리저리 움직이는 느낌이 더 좋았던 것 같고요. 신체적으로도 정신적으로도 긴장이 풀린 상태에서, 여러 자극이나 감각을 충분히 느낄 수 있는 여유를 원하고 있다는 느낌이 들었습니다.
정서가 원하는 것 2 : 느낀 것은, 어떻게든 나누고 싶다
이렇듯 살아나는 감각을 어떻게 발산해야 할지 혼란하던 차, 몇 가지 확실하게 '하고 싶다'고 느껴지는 일들이 있었습니다. 주로 개인적인 경험을 다른 사람들에게 조금 더 정성스럽게, 적극적으로 나누는 일들이었어요.
앞서 언급했던 남해 여행 때는, 엽서집을 만들어서 단골 사장님들께 선물로 드리기로 했습니다. 남해에서 느꼈던 편안함을 떠올리며 직접 찍은 사진으로 자그마한 엽서집을 만든 뒤, 여행을 다니면서 직접 전해드렸어요. 가족들과 보냈던 시간들을 소박하게나마 더 많은 사람들과 나누니, 남해에 대한 애정이 보다 풍성하게 살아나는 듯했습니다.

회사에서도 비슷한 마음이 생겼습니다. 일을 하면서 개인적으로 느끼고 생각한 것들이 나에게만 의미 있게 끝나는 것이 아니라, 다른 사람에게도 의미 있게 이어졌으면 좋겠다는 생각이 들었어요.
마침 프로젝트를 마무리하는 시기였는데, 일을 진행하며 고민하고 결론냈던 것들을 정확하고 충실하게 담기 위해 최종 리포트 작업에 신경을 많이 썼습니다. 깊게 생각한 내용을 모두 담되 어렵게 읽히지 않았으면 해서, 텍스트와 이미지를 명료하게 다듬는 데 많은 노력을 기울였어요. 최종 리포트를 제출한 뒤에는, 이 경험이 다른 분들의 일에도 유용하게 활용되었으면 해서 회사 내부적으로 여러 차례 공유 자리를 만들기도 했습니다.
정서가 원하는 것 3 : 에너지를 쓴 뒤에는, 그냥 단순하게 존재하자
한편으로, 사람들과 함께 있는 시간이 지나고 집에 돌아오면 그저 단순해질 수 있는 시간에 마음이 끌렸습니다. 그럴 땐 그냥 몸을 맡겨버렸어요. 뜨개질 하기, 만화나 예능 보기, 밖에 나가서 걷기, 등등. 달리 의미는 없지만 별 생각 없이 반복할 수 있는 단순한 행동에 몰입하며 시간을 보냈습니다.
이미 지나 온 시간에 대해 생각을 많이 하면 많이 할수록 정서의 흐름이 둔감해진다는 걸 이제 마음이 아는 것 같아요. 그래서 무언가 에너지를 쏟고 나면 조금은 단순해질 수 있는 시간으로 저를 이끄는 것 같습니다. 작년까지만 해도 생산적이지 않은 시간을 지루해서 잘 견디지 못했었는데, 요즘에는 그냥 아무렇게나 노는 시간을 원하는 만큼 갖고 있습니다.
이렇듯 정서의 목소리를 따라 살다 보면, 일상 속에 ‘자연스러운 동력‘이 생겨나길 바라게 되는 것 같아요. 감정의 에너지에 기댄 채로, 원하는 삶의 모습에 저절로 가까워졌으면 좋겠다고 생각하게 되는 거죠. 하지만 생각처럼 물 흐르듯이 감정이 일상으로 이어지지는 않는 것 같습니다. 감정을 중심에 두려고 해도, 주변 사람들을 신경 쓰거나 현실적인 책무에 시달리다 보면 어느새 정서의 흐름이 뚝 끊기거나 막혀 있기도 합니다.
그럼에도, 마음이 편안해질 수 있는 삶의 모양을 찾기 위해서는 눈에 보이지 않고 손에 잡히지 않는 나의 ’정서’를 일상의 중심으로 끊임없이 가져와야 하는 것 같아요. 아주 작고, 사소한 찰나일지라도 정서가 또렷이 살아나는 순간은 우리에게 힌트를 줍니다. 내가 여전히 꿈꾸는 세상은 어떤 모양인지, 어디로 나아가야 나에게 소중한 것을 더 소중하게 품을 수 있는 삶을 찾을 수 있는지에 대해서요.
이번 계절, 여러분의 정서는 어떤 것에 끌렸나요?
마음 속 고유한 정서가 자연스럽게 흐르는 일상을 만들어 가고 있나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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