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3. 정치에 무관심한 어린 어른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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게르하르트 리히터, 「Betty」, 1988 © Gerhard Richter / 이미지 출처 : Artforum


지난 12월 3일 이후, 여러분은 우리나라의 상황을 어떻게 지켜보셨나요? 저는 지난 반년 간 거의 하루도 빠짐없이 뉴스를 챙겨봤던 것 같습니다. 평소 뉴스를 챙겨보는 스타일도 아닌데 말이에요. 지금 와서 돌이켜보니, 국민들이 이렇게 매일 아침 뉴스를 보는 나라가 전쟁 중인 나라가 아니고서야 또 있을까 싶은데요. 잘 생각해보면 우리나라도 공식적인 폭력 사태는 일어나지 않았지만, 사실상 내전 같은 기간을 겪은 것 같아요. 반년이라는 긴 시간 동안, 권력을 지키려는 사람들과 그들로부터 권력을 되찾아오려는 사람들이 정면으로 충돌했으니까요. 그 기간 내내 두 세력은 정말 한 치의 양보도 없이 팽팽하게 맞섰고, 계엄 해제, 탄핵 의결, 탄핵 심판, 대선 등 중요한 국면마다 상대방에게 지지 않기 위해 법적, 정치적, 심리적 수단을 총동원했습니다. 국민들은 불안 속에서 이 모든 과정을 지켜보며, 새로운 권력이 또다시 잘못된 사람의 손에 떨어질까 봐 마음을 졸여야 했죠.

그런데 놀랍게도, 모두가 이러한 정치적 상황을 관심 있게 지켜보는 건 아닌 듯했습니다. 주변을 둘러보면 많은 친구들이 계엄을 정치적 “해프닝” 정도로 받아들인 채, 그 전과 다름없이 회사에 가고, 맛집에 가고, 넷플릭스를 보면서 평범한 일상을 그대로 살아가는 듯했죠. 온라인 상의 사람들이 서로 열띄게 싸우는 것을 보다가, 일상에서 또래 동료나 친구들을 만나면 괴리감을 느꼈습니다. 처음에는 ’어떻게 이런 일을 그냥 넘어갈 수 있지?’ 싶었지만, 저도 사회 문제에 무지한 시절이 있었기에 그럴 수도 있겠다 하고 넘어갔습니다. 그런데 선거철을 앞두고 20-30대들의 ‘정치적 무관심’을 지켜보다 보니, 거기에 어쩐지 묘한 우월감이 섞여 있다는 점을 깨닫게 되었습니다. 많은 사람들이 자신도 모르게 ‘정치에 무관심한 태도’를 더 성숙하고 수준 높은 것으로 여기고 있더라고요. 그 지점에서 저는 경각심과 약간의 두려움을 느낍니다.



왜 어떤 사람들에게는 정치에 무관심한 태도가 ’더 나은‘ 무언가로 여겨지는 걸까요? 제 나름대로 이유를 추측해 보았습니다.

우선 가장 직접적인 이유는, 알아서 자기 능력껏 잘 살아남자 라는 식의 각자 도생 라이프스타일이 지나치게 고착화되었기 때문인 것 같습니다. 솔직히 말해 우리 세대는 자라면서 사회 문제에 마땅히 관심을 가져야 한다는 가르침을 받지 못했습니다. 우리가 자라면서 인식한 ‘사회’는 ‘관심의 대상‘이 아니라 ‘생존의 장’이었고, ‘함께 살아가는 곳‘이기 이전에 일단 ‘나부터 살아남아야 하는 곳‘이었죠. 우리는 언제나 중간-상위 정도에 해당하는 안정권에 들기 위해서 누군가를 이겨야 했고, 이 목표를 위해 가지고 있는 능력과 자원을 효율적으로 사용해야 했습니다. 이러한 삶의 방식은 어른이 되어서도 지속되어, 우리는 ‘내 삶의 윤택함‘을 지키기 위해 시간을 끝없이 쪼개 쓰며 바쁘게 살아갑니다. 이런 세계관 속에서 내 삶을 낫게 만들 사람은 나 자신 뿐이며, 국가 권력이 내 삶을 이롭게 해준다는 인식은 애초에 희박합니다. 그러니 나라의 기반 자체가 흔들리는 정치적 문제 상황이 생겼을 때조차 자신의 삶과는 무관하다고 느끼는 것이죠.

이러한 라이프스타일 사회 전체에 퍼지면서, ‘정치적 무관심‘이 일종의 계급 의식으로 작동하게 되지 않았나 싶습니다. 정치와 유리된 채로 각자 도생하는 것이 삶의 기본값이 되면, 그 구조 속에서 어려움을 겪는 사람들이 주로 정치나 사회 구조에 관심을 갖게 됩니다. 그렇게 되면 ’나는 정치에 관심이 없어‘라는 말은 자연스레 ’나는 그런 것에 관심을 가질 필요 없이 내 힘으로 살아갈 능력이 있다‘는 것을 의미로 전환되어 버립니다. 이 지점에서 ’정치‘는 약자들이 의존하는 것, 자기 삶의 문제를 사회 탓으로 돌리는 사람들이 매달리는 것이라는 왜곡된 프레임이 생깁니다. 이런 인식은 특정 정치인을 지지하거나, 시위에 나가는 등 적극적인 행동을 펼치며 사회에 문제를 제기하는 사람들을 묘하게 ’내려다보는’ 시선으로 이어지기도 하죠. “나는 누구에게도 기대지 않고 잘 살아가고 있는데, 저 사람들은 왜 자꾸 뭔가를 요구하지?“ 라고 생각하며 그들을 이해하지 않습니다. 이러한 거리두기 속에는 ’나는 아직 이 사회에서 약자가 되지 않았다’라는 안도감이 깔려 있죠.

이처럼 정치적 무관심이 사회적으로 안정된 계급의 전유물처럼 여겨지는 분위기는, 정치 혐오가 널리 확산될 수 있는 토대가 되는 듯합니다. 사회 탓을 하지 않으서 능력껏 잘 살아가는 것만이 건강한 삶의 방식이라고 생각하는 사람들에게, 정치에 관심이 많은 사람들은 어떻게 비춰질까요? 아마 자기가 해결해야 할 문제를 사회에 외치며 분노하는 감정적인 사람들로 보일 것입니다. 세상을 균형 있게 보지 못하고, 자기 입장에 빠져서 편향된 견해를 퍼뜨리는 건강하지 않은 사람들 말이죠. 그리고 정치인들은 이들의 감정을 선동해서 자기 이익을 챙기는 이기적인 사람들로 보일 것입니다. 정치인이라는 직업은 약자들의 심리를 이용해 지지를 얻어서 권력을 유지하려는 직업이며, 그 이상 그 이하도 아니라고 보는 것입니다. 이러한 정치 혐오는, ‘그들‘은 비합리적이면서 주관적이고 이기적인 사람들인 반면, ‘나‘는 합리적이며 객관적이고 깨어 있는 사람이라는 자의식을 유지해 줍니다. 이러한 자기 이미지는 정치에 거리를 두며 살아가는 현재의 삶이 건강하고 바람직한 태도라는 정당성을 부여해주기도 하고요.



사실 저도 정치에 관심이 많다고 하기에는 부족함이 많고, 꼭 모든 사람이 사회 문제에 관심을 기울이며 살아가야 하는지도 잘 모르겠습니다. 하지만 많은 사람이 정치적 무관심에 빠질수록 정치 권력이 자의적으로 여론 지형을 만들 수 있는 ’공간’이 생겨난다는 것은 매우 큰 문제입니다. 이번 사태를 겪으며 가장 뼈저리게 느낀 것은 현재 우리나라의 언론이 전혀 객관적이지 않다는 사실이었습니다. 저 또한 언론에 의해서 인식이 많이 왜곡되어 있었다는 것을 알았고, 지금도 여전히 언론이 만들어주는 프레임대로 생각하는 사람들이 많다는 것을 느꼈습니다. 언론은 우리의 심리적 속성을 정확하게 파고들어 불안과 계급의식, 상호 혐오를 더 부추기고 정말로 중요한 문제로부터 사람들을 떼어놓습니다. 정치에 무관심한 상태로 살면, 나도 모르는 사이에 그들이 의도한 대로 사고하고, 그들이 짜놓은 판 위의 말처럼 이용될 수 있다는 것을 우리는 알아야 합니다.

이번 12월 3일 계엄 사태 또한, 실제로는 우리나라의 민주주의 가치를 통째로 훼손한 정치적 범죄였음에도 불구하고, 언론이 이 잘못을 은근히 축소하고 두 정당 간의 정쟁으로 왜곡하는 바람에 많은 사람들이 이번 대선의 본질을 잊어버렸습니다. 이번 대선은 민주주의 기본 가치를 회복하기 위한 선거였습니다. 6월에 우리 손에 쥐어진 투표지는 국회와 헌법재판소가 정치의 건강함을 회복하기 위해 국민에게 맡겨준 소중한 참정권이었습니다. 민주주의 사회에서 선거에 나온 정치인 A, B 중에 누구 하나를 선택해 지지하는 행위는 흑백 논리에 빠지는 행위도 아니고, ‘감정적인’ 행위도 아니며, ‘위선‘도 아니고, ‘취향‘도 아닙니다. 우리는 현실적으로 처해 있는 국가의 문제를 직시하고 이를 가장 잘 해결할 수 있는 실질적 능력을 가진 사람을 지도자로 세워야 할 의무가 있으며, 언론에 속아 잘못된 선택을 한다면 이에 분명한 책임을 져야 한다고 생각합니다. 어쨌든 우리는 사회를 만들어나가는 어른이 되었으니까요. 

요즘은 뉴스를 매일 보지 않아도 되어서 마음이 가볍긴 합니다. 정치에 적당히 무관심해도 즐겁게 살아갈 수 있는 사회가 가장 살기 좋은 사회겠죠. 그러나 중요한 순간마다 책임 있는 관심을 기울이지 않으면 이런 사회를 계속 누릴 수 없다는 것을, 우리가 잊지 않았으면 좋겠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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