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여러분은 글 쓰는 걸 좋아하시나요?
저는 요즘 글을 자주 쓰려고 노력하고 있긴 하지만, 글 쓰는 걸 좋아하는 사람까지는 아닌 것 같아요. 아무래도 쓰는 것보다는 만드는 것을 좋아하는 사람이라, 글쓰기는 어디까지나 제가 만들고 싶은 것으로 나아가기 위한 중간 과정 정도로 느껴집니다. 그렇다보니 글 자체를 목적으로 삼는 게 어렵고, 글의 아름다움이나 완성도에 신경 쓰는 것도 즐겁기보다는 버거운 것 같아요. 한 번에 잘 써지지도 않고, 써놓고 보면 왜 이리 장황하고 어색한 문장도 많은지. 여기 저기 손을 보려다가도, 금세 ”아, 하기 싫다-“ 하고 미뤄버리곤 하죠.
그럼에도 돌이켜보면, 20대 초반부터 꾸준히 무언가를 써왔던 것 같습니다. 일기도 꾸준히 써온 편이고, 좀 더 바깥을 향해 쓰는 대외적인 글쓰기도 주기적으로 시도했던 것 같아요. 글 자체를 쓰고 싶어서라기보다는, 기질적으로 생각이 많아서 그랬던 것 같습니다. 머릿속에 생각이 자꾸 쌓이니까 어떻게든 꺼내놓아야만 했던 거죠. 뒤죽박죽한 생각을 어떻게 꺼내놓아야 의미 있게 해소가 될까 이런 저런 방법을 궁리했고, 표현 방식 중에서는 그래도 글이 비교적 부담 없고 편해서 지금까지 계속 뭔가를 쓰게 된 것 같습니다.
저는 다양한 곳에 글을 쓰고 있습니다. 혼자만 보는 일기장도 있고, 가족이나 친구랑만 친구를 맺은 개인 블로그도 있어요. 요즘에는 챗지피티와의 채팅방도 일종의 ‘쓰기’의 공간이 되어가는 것 같아요. 그때 그때 필요에 따라 그렇게 해온 것인데, 이번에 이 블로그를 열면서 왜 이렇게 여러 층위로 글을 쓰게 되는 걸까 문득 생각해보게 됐는데요. 이번 글에서는 제 다양한 글쓰기 공간 들을 짚어보면서 그런 다층적인 ‘쓰기’를 를 통해 뭘 하고 싶은 것인지 정리해보려고 합니다.
사회적 검열을 벗어던지는 곳 : 일기장
저에게 일기장은 정말 ’아무거나‘ 쓰는 공간입니다. 남들이 보면 큰일 날 말들이 가득 들어 있죠. 온갖 흑역사, 바보 같은 말들, 정신적으로 많이 불안했을 때 빠져들었던 건강하지 않은 생각들도 고스란히 다 남아 있습니다. 그런 흔적들을 지금에 와서 일일이 다시 열어보진 않지만, 삭제하지 않고 계속 갖고 있습니다. 보면 지워버리고 싶을 테니, 어쩌면 일부러 안 보는 것일지도 모르겠어요. 부끄러운 과거를 굳이 남겨두는 이유는 ‘일기장만은, 나의 그 어떤 모습도 허용되는 곳이다‘라는 나름의 원칙을 지키고 싶어서인 것 같습니다.
사회 생활을 하면 매일 어느 정도 감정만을 검열하며 살아가야 합니다. 사회에는 ’이런 상황에는 이 정도의 감정을 느끼는 게 맞는 거야’ 라는 식의 보이지 않는 룰이 있고, 그걸 어느 정도 지켜야 사람들과 무리 없이 어울리며 지낼 수 있죠. 그런 사회적 감각을 몸에 익히는 것도 매우 중요하지만, 한편으로 나라는 사람의 개인성을 지키며 살아가려면 그 경계 바깥의 감정들에게도 목소리를 낼 공간을 주어야 한다고 생각해요. 그래서 ‘일기장’이라는 최소한의 공간에서는 모든 감정과 생각이 허용되는 ‘안전한 공간’으로 유지하려 합니다.
자기 파괴적 감정을 걸러내는 곳 : 개인 블로그 (+과거의 그림 일기)
그런데, 그런 글쓰기를 통해 모든 감정들을 다 긍정하게 되면 문제가 생기긴 합니다. 불안, 수치, 분노, 두려움 등 그 힘이 강해졌을 때 스스로에게 명백히 해가 되는 감정들이 있으니까요. 아무래도 일기에 쓰게 되는 감정은 긍정적인 것보단 부정적인 것일 때가 더 많은데, 이러한 쓰기에 너무 몰입하다 보면 그런 감정들만 계속 커질 위험이 있습니다. 이럴 때 필요한 건, 다시 ‘타인의 시선을 의식하는‘ 글입니다. 단, 그냥 세상 사람들이 아니라 나를 아끼는 사람들, 적어도 나를 잘 아는 사람들의 시선을 의식하는 게 필요합니다.
지금 저에겐 개인 블로그가 그 역할을 해주고 있어요. 가족과 친구들이 볼 거라고 생각하면서 제 이야기를 쓰는 곳이죠. 실제로 그걸 가족과 친구들이 매번 열심히 읽어주진 않지만, 글을 쓸 때 ‘누군가 볼 수 있는 글이다’라고 의식하고 쓴다는 게 중요한 것 같아요. 나를 걱정하거나 신경 쓰는 따뜻한 시선을 상상하며 제 안의 마음들을 검열하는 거죠. 그렇게 하면 저를 앞으로 가지 못하게 하는 생각과 감정들은 자연스럽게 덜 주목하게 되고, 어느 정도 건전한 감정들, 나에게 힘을 줄 수 있는 감정들이 남게 됩니다.
개인적 특수성을 걸러내는 곳 : 공개 블로그(Zine)
일기와 개인 블로그까지 쓰고 나면, 사실 어느 정도 생각은 정리됩니다. 뭘 해야 할지 알게 되고, 마음도 한결 가벼워지죠. 그러다 최근에 와서 이보다 한 단계 더 공적인 글을 써보자고 생각하게 된 건, 제가 하는 생각들이 나 자신 외에 조금 더 큰 무언가와 연결되었으면 하는 욕심이 생겼기 때문입니다. 더 많은 사람들을 향해서 무언가를 쓰고 있다고 의식하면, 저 개인에게만 의미가 있는 사적인 내용들은 걸러지고, 많은 사람들이 함께 생각해볼 만한 이야기가 남지 않을까 싶었어요.
그렇게 해서 만든 게 여기, 이 공간입니다. 첫 시도이기 때문에 당장 목적을 이룰 수 있을 것 같진 않습니다. 갑자기 많은 사람이 나타나서 ‘이거, 정말 나도 해보고 싶었던 얘기야.’ 하고 반응을 해주시진 않을 거에요. 공적인 글로 나아가지 못하고 여전히 사적인 시선에 갇힌 글에 머물러버릴 수도 있고요. 하지만 그렇게 된다고 해서 의미가 없다고 생각하지는 않습니다. 이건 저라는 사람이 세상에 어떻게 조금 더 유용하게 활용될 수 있을까 탐색해보는 실험이니까요. 가능성과 한계를 맛보는 것만으로도 다음 단계로 가볼 수 있을 것 같아요.
아무튼 지금의 저는 이렇게 세 단계로 글을 쓰고 있습니다. 즉각 떠오르는 생각들은 개인 일기장에 마구 씁니다. 화나거나, 짜증나거나, 혼란스럽거나, 슬플 때, 떠오르는 문장 그대로 써내립니다. 그 다음에는 개인 블로그를 씁니다. 몇 개월 전까지는 매일 썼는데, 요즘은 일주일에 한 번 정도로 줄였어요. 일요일 밤 자기 전에 일주일을 돌이켜보면서 ‘회사는 어땠더라, 요즘 내 기분은 어땠더라, 나는 지금 뭘하고 싶나‘ 등에 집중해서 생각나는 대로 씁니다. 문장은 아무렇게나 쓰지만, 내용적으로는 감정을 정리해나가며 쓰려고 하죠.
그리고 아직 익숙하지 않은 세 번째 단계의 글, 이곳에 쓰는 글은 여유로운 저녁 또는 주말에 쓰고 있습니다. 아무래도 내용, 구조, 문장의 완성도까지 나름대로 신경을 써가면서 글을 쓰려니 ‘긴 여유 시간‘이 필요한 것 같아요. 열심히 다듬으며 쓰는데도 글이 자꾸 길어지고 어려워지는 것 같아 고민이 많지만, 가능한 한 틈틈이 에너지를 내보려고 합니다. 쉴 시간에 글을 쓴다는 게 조금 피곤하긴 해도, ’아직 만나지 않은 어떤 사람들‘을 떠올리면서 무언가를 열심히 하고 있다는 게 저에게 긍정적인 힘을 주는 것 같습니다.
첫 시작인 1호 잘 마무리하고, 2호까지 꼭 제대로 완성해 보는 것이 1단계 목표입니다.
| 8. 시민들은 디자인의 주체가 될 수 있을까 : 헬싱키 오디 도서관 (0) | 2025.07.08 |
|---|---|
| 7. 짧은 교토 여행, 느린 호흡을 불어넣어준 장소들 (0) | 2025.07.08 |
| 5. 기질의 부름대로 살아간다는 것 : 『가치 있는 삶』, 마리 루티 (1) | 2025.07.06 |
| 4. 집 안에 갇혀버린 행복을 꺼내다 : 『탈 주택』, 야마모토 리켄 (3) | 2025.07.06 |
| 3. 정치에 무관심한 어린 어른들 (0) | 2025.07.06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