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1
나의 감정과 타인의 감정이 잘 구분되지 않아 힘들었던 적, 혹시 있으신가요? 다른 사람의 감정에 지나치게 이입된 나머지 어느새 내 삶까지 휩쓸리는 느낌, 누가 부탁한 적도 없는데, 스스로 다른 사람의 문제까지 감당하려 애쓰고 있는 듯한 순간들.
왜인지 모르겠지만, 저는 20대 때 유독 그런 상태에 자주 빠졌습니다. 가까운 사람들뿐 아니라 일상에서 스쳐 지나가는 사람들의 감정까지도 마음에 자꾸 남았고, 그 느낌들을 그냥 넘기지 못하고 오래 들여다보다가 정신적으로 지치기도 했습니다. 친구들과도 이 마음에 대한 이야기를 자주 나눴고, 20대 후반에는 전문가의 상담을 받아보기도 했습니다. 그때마다 들은 말은 대체로 비슷했습니다. “너무 신경 쓰지 말라”, “사람들은 사람들이고 너는 너다“, ”지나치게 깊이 생각하지 말고, 너 자신에게 이로운 선택을 해라”. 요컨대 나와 무관한 사람들에게 에너지를 빼앗기지 말고, 스스로를 보호할 수 있는 ‘경계‘를 확실히 세우라는 조언이었습니다.
그때는 그렇게 해보려고 해도 잘 안 됐지만, 몇 년 간 의식적으로 노력하다보니 사람들이 말했던 ‘경계’라는 것이 조금씩 몸에 배기 시작했습니다. 특히 독립을 하고 나서부터는 현실적인 일을 챙기느라 바빠서 예전만큼 사람들에 대해 깊이 생각할 여유가 없어지기도 했고요. 그렇게 어느 순간 저에게도 뚜렷한 ‘경계’가 생겼고, 그 안에서 중심을 지키면서 살아갈 수 있게 되었습니다. 타인의 감정은 예전보다 덜 느껴졌고, 관계 속에서도 예전만큼 흔들리지 않게 되었죠. 그 이후로 확실히 사는 것이 편해졌습니다. 하지만 가끔은, 이렇게 살아가는 게 정말 내가 바라던 방식이었을까? 하는 질문이 마음 속 한 구석에서 피어오르곤 합니다.
2
책을 읽다보면, 글을 쓰는 분들 중에는 조금 다른 방식으로 감정을 다루는 사람들이 있다는 것을 알게 됩니다. 그들은 '나의 경계' 안쪽에만 머무르지 않습니다. 나와 타인, 나와 세상의 경계를 넘나들며, 그 사이 어딘가에서 우리 모두에게 중요한 이야기를 길어 올립니다. 그 중에서도 한강 작가는 ‘자기 보호’라는 개념과는 전혀 다른 방식으로 살아오신 분 같습니다. 한강 작가의 글에서는 자신을 보호하기 위한 경계라는 것이 느껴지지 않습니다. 그분의 글을 읽을 때마다 한 사람의 마음이 자기 자신을 너머 이토록 멀리, 이토록 깊게 이동할 수 있다니, 하고 아득한 경이를 느낍니다.
특히, 장편소설 「소년이 온다」 에서 한강 작가의 마음은 한 번도 만난 적 없는 사람들, 더 이상 살아 있지 않은 사람의 마음까지 건너갑니다. 그리고 그 목소리를 ‘지금, 여기’로 가져와 우리 앞에 펼쳐놓습니다. 「소년이 온다」에서 다뤄지는 사람들은 너무나 잔인한 고통을 겪은 사람들이기에, 읽는 사람조차 그 소재만으로 막막함과 두려움을 느끼게 됩니다. 그러나 그녀는 그들의 이야기 앞에서 뒷걸음질치지 않았고 진심을 다해 자기 안에 담아냈습니다. 그녀의 글에서는 ‘나의 경계‘를 지키기보다는, 오히려 그것을 끊임없이 무너뜨리며 나아가려는 단단함이 느껴집니다.
3
최근 발간된 에세이집 『빛과 실』 에는 한강 작가로 하여금 『소년이 온다』를 쓰게 만든 어릴 시절의 경험이 담겨 있습니다. 이야기에 따르면, 열두 살 무렵 우연히 접한 『광주 사진첩』에서 폭력에 잔인하게 희생된 사람들의 사진을 목격하고 한강 작가는 처음으로 인간에 대한 근원적인 신뢰를 상실했습니다. 그 경험은 마음에 오래도록 자리 잡아 그녀의 머릿속에 인간과 삶에 대한 근본적인 질문을 불러일으켰고, 그 질문에 답하기 위해 한강 작가는 광주를 정면으로 다루겠다는 마음을 먹게 되었습니다.
1980년 1월 가족과 함께 광주를 떠난 뒤 사 개월이 채 지나지 않아 그곳에서 학살이 벌어졌을 때 나는 아홉 살이었다. 이후 몇 해가 흘러 서가에 거꾸로 꽂힌 『광주 사진첩』을 우연히 발견해 어른들 몰래 읽었을 때는 열두 살이었다. 쿠데타를 일으킨 신군부에 저항하다 곤봉과 총검, 총격에 살해된 시민들과 학생들의 사진들이 실려 있는, 당시 정권의 철저한 언론 통제로 인해 왜곡된 진실을 증거하기 위해 유족들과 생존자들이 비밀리에 제작해 유통한 책이었다. 어렸던 나는 그 사진들의 정치적 의미를 정확히 이해할 수 없었으므로, 그 훼손된 얼굴들은 오직 인간에 대한 근원적인 의문으로 내 안에 새겨졌다. 인간은 인간에게 이런 행동을 하는가, 나는 생각했다. 동시에 다른 의문도 있었다. 같은 책에 실려 있는, 총상자들에게 피를 나눠 주기 위해 대학병원 앞에서 끝없이 줄을 서 있는 사람들의 사진이었다. 인간은 인간에게 이런 행동을 하는가. 양립할 수 없어 보이는 두 질문이 충돌해 풀 수 없는 수수께끼가 되었다.
- 한강,『빛과 실』, 문학과지성사, p16
● 노벨문학상 수상 강연문 © The Novel Foundation 2024
『소년이 온다』 를 구상하는 과정에서 그녀는 9백여 명의 증언을 모은 책을 구해, 한 달 간 매일 아홉 시간씩 정독했습니다. 이어서 다른 나라에서 일어난 각종 국가폭력에 대해서도 깊이 조사했습니다. 아마 그녀는 그 시간 동안 역사적 사실을 습득하는 데에서 멈추는 것이 아니라, 희생자들의 이야기를 온 감각과 감정을 다해 느끼고 내면화했을 것입니다. 시간과 장소에 구애받지 않고 자신이 다루고자 하는 고통을 가능한 만큼 모아서 자기 안에 감각으로 담아낸 것입니다. 이에 대해 그녀는 '죽은 자들의 도움을 받았다'고 표현합니다. 결국 그녀는 그들과의 이야기를 자신만의 방식으로 이루어냈고, 그 내용을 우리의 ‘현재‘로 전달해 주었습니다.
열두 살에 그 사진첩을 본 이후 품게 된 나의 의문들은 이런 것이었다. 인간은 어떻게 이토록 폭력적인가? 동시에 인간은 어떻게 그토록 압도적인 폭력의 반대편에 설 수 있는가? 우리가 인간이라는 종에 속한다는 사실은 대체 무엇을 의미하는가? 인간의 참혹과 존엄 사이에서, 두 벼랑 사이를 잇는 불가능한 허공의 길을 건너려면 죽은 자들의 도움이 필요했다. 이 소설의 주인공인 어린 동호가 어머니의 손을 힘껏 끌고 햇빛이 비치는 쪽으로 걸었던 것처럼.
당연하게도 나는 그 망자들에게, 유족들과 생존자들에게 일어난 어떤 일도 돌이킬 수 없었다. 할 수 있는 것은 내 몸의 감각과 감정과 생명을 빌려드리는 것뿐이었다. 소설의 처음과 끝에 촛불을 밝히고 싶었기에, 당시 시신을 수습하고 장례식을 치르는 곳이었던 상무관에서 첫 장면을 시작했다. 그곳에서 열다섯 살의 소년 동호가 시신들 위로 흰 천을 덮고 촛불을 밝힌다. 파르스름한 심장 같은 불꽃의 중심을 응시한다.
이 소설의 한국어 제목은 『소년이 온다』이다. '온다'는 '오다'라는 동사의 현재형이다. 너라고, 혹은 당신이라고 2인칭으로 불리는 순간 희끄무레한 어둠 속에서 깨어난 소년이 혼의 걸음걸이로 현재를 향해 다가온다. 점점 더 가까이 걸어와 현재가 된다. 인간의 잔혹성과 존엄함이 극한의 형태로 동시에 존재했던 시공간을 광주라고 부를 때, 광주는 더 이상 한 도시를 가리키는 고유명사가 아니라 보통명사가 된다는 것을 나는 이 책을 쓰는 동안 알게 되었다. 시간과 공간을 건너 계속해서 우리에게도 되돌아오는 현재형이라는 것을. 바로 지금 이 순간에도.
- 한강,『빛과 실』, 문학과지성사, p20-21
● 노벨문학상 수상 강연문 © The Novel Foundation 2024
4
많은 사람들은 명백한 악을 마주했을 때, 악을 향해 단단한 경계를 세우고 분노로 맞서려 합니다. 악의 반대편에 서서 그들을 단죄하고 응징하는 일에 온 에너지를 집중하고, 그 행위야말로 '선'이며 '강함'이라고 믿곤 하죠. 그러나 한강 작가의 방식은 다릅니다. 악을 향해 일방적으로 분노하지 않고, 선에 기대어 단순하게 슬퍼하지도 않습니다. 분노나 슬픔 같은 자기 감정에 집중하는 것이 아니라, 악이 남긴 고통이 새겨진 누군가의 마음 속으로 천천히 걸어 들어갑니다. 그 고통 속에 선과 악의 프레임 같은 건 없습니다. 말로 설명할 수 없는 통증과 회복 불가능한 상처들이 남아 있을 뿐입니다. 그녀는 그 통증의 감각을 몸으로 견뎌낸 뒤, 자신이 가진 언어로 그것을 세상에 꺼내 놓습니다.
저는 한강 작가가 말하고자 하는 것이 추상적인 '악'이 아니라 그로 인해 남겨진 구체적인 '고통'이라는 점에서, 그녀가 그 누구보다 강인한 사람이라고 느낍니다. '한 사람 이상의 고통'을 '한 사람 분의 몸'으로 견뎌낸다는 건 상상 이상으로 큰 에너지를 요구하는 일일 것입니다. 실제로 한강 작가는 『소년이 온다』를 썼던 시간을 돌이켜보면 압도적인 고통부터 떠오른다고 합니다. 그 시간 동안 아마도 그녀는 그 고통을 매우 성실하고 정직한 방식으로 묵묵히 써내려갔을 것입니다. 한강 작가는 그 고통을 다 견딘 뒤에야 그 고통의 근원이 사랑이라는 사실을 깨달으셨던 것 같습니다. 그 모든 과정에서 작가 본인은 힘들고 슬픈 날이 더 많았을지 몰라도, 글을 읽는 독자로서는 '자신의 타고난 어떤 것을 통해 세상을 사랑하는 법을 스스로 만들어 온' 매우 강인한 사람이라고 느껴집니다.
그보다 앞서 『소년이 온다』를 썼던 일 년 육 개월을 기억하려 하면 가장 먼저 떠오르는 건 압도적인 고통이다. 그걸 일종의 '들림'이었다고 말한다면 손쉬운 일일 거다. 내가 작가로서 영매의 시간을 건너갔다고 근사하게 말한다면. 하지만 그건 사실이 아니다. 그때 나는 '들리'지 않았다. 어떤 트랜스 상태에도 들어가지 않았다. 매 순간 분명하게 정신을 차리고 있었다. 고통이 나를 부수고 또 부수는 걸 견디면서. 작업실에서, 지하철에서, 횡단보도에서, 부엌에서, 이불 속에서 이를 물고 울고 있는 내가 미친 사람처럼 보였겠지만, 사실은 조금도 미치지 않았다.
그 고통이 대체 무엇이었던가를, 『소년이 온다』를 쓰고 나서 곰곰이 생각해야 했다. 그 소설을 읽은 사람들도 함께 느꼈다고 말하는 바로 그 고통을. 그 생생한 고통은 대체 무엇을 증거하는 걸까? 설마, 그건 사랑인가? 지극한 사랑에서 고통이 나오고, 그 고통은 사랑을 증거하는 걸까? 그렇다면 그 사랑에 대한 다음 소설을 쓰고 싶었다.
- 한강,『빛과 실』, 문학과지성사, p54-55, 「출간 후에」中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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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강 작가가 노벨상을 수상하고 나서 약 두 달이 흐른 시점인 12월 3일, 서울은 하마터면 또다른 비극의 장소가 될 뻔했습니다. 사익을 위해 타인의 존엄을 짓밟으려던 이들이 또다시 나타났던 것입니다. 한강 작가가 노벨문학상 수상 강연문에 쓴 것처럼, '인간의 잔혹성과 존엄함이 극한의 형태로 동시에 존재했던 시공간을 광주라고 부를 때' , '광주는 더 이상 한 도시를 가리키는 고유명사가 아니라 보통명사' 이며, '시간과 공간을 건너 계속해서 우리에게도 되돌아오는 현재형이라는 것'을 현실로서 목도한 날이었습니다.
그 날 밤 저는 집에서 모든 것을 지켜봤습니다. 가장 강하게 느낀 감정은 두려움이었습니다. 생중계 화면에 군인들이 등장했을 때, 정말 누군가 다치거나 해를 입게 될까봐 사태가 빨리 일단락되기만을 바랐습니다. 그런데 그 시점에 무기도 없이 맨몸으로 여의도로 달려간 사람들이 있었습니다. 너무나 당연스럽게, 자신의 안위보다 더 중요한 무언가를 위해서 행동하는 사람들이 있었습니다. 제가 마땅히 배웠어야 하는데 배우지 못한, 몸으로 익혔어야 하는데 익히지 못한 무언가가 그들에게는 있다는 느낌이 들었습니다.
그때부터 6개월 간, 나라를 정상적인 상태로 회복시키기 위해 애쓰는 사람들을 미디어를 통해 지켜보며, 빚을 지고 있다는 기분을 느꼈습니다. 내가 나 자신만 생각하며 평범하게 살아갈 수 있는 건, 자기 자신보다 더 큰 무언가를 위해 분투했던 사람들이 만들어 놓은 세상 덕분이라는 걸 실감했습니다. 지금 이 순간에도, 그 세상을 다시 훼손하려는 사람들이 있고, 그 세상을 지켜내기 위해 밤낮으로 싸우는 사람들이 있었습니다. 그 모습을 보며, '나의 경계' 바깥의 무언가를 위해 살아가는 삶에 대해 생각하지 않을 수 없었습니다.
6
지금의 한국 사회는 아무래도 마음의 '경계'를 단단히 세우며 살아가는 것이 능력처럼 여겨지는 사회입니다. 감정을 지나치게 깊이 느끼는 것은 비효율로 간주되고, 슬프고 고통스러운 일은 최대한 빨리 털어내는 것이 현명한 태도라 여겨집니다. 이런 분위기 속에서 사람과 사람 사이에서 피어나는 복잡한 질문들은 자주 외면당하고, 답을 찾지 못한 채 흩어져 사라져 버립니다. 우리는 감정에 삶의 주도권을 빼앗기지 않는 법을 터득하는 대가로, 마음을 쓰는 법을 잊어버리며 사는지도 모릅니다.
저 개인적으로는, 인생의 다음 방향을 찾기 위해서라도, 마음을 제대로 쓰는 법을 다시 배워 나가야겠다고 느낍니다. 내 삶이 나 혼자만의 것이 아니며, 다른 사람의 삶이 곧 내 삶이 될 수도 있다는 마음을 품고 살 수 있었으면 좋겠습니다. '나의 경계'를 세우는 것이 마땅히 필요한 순간도 있겠지만, 때에 따라 그 경계를 용감하게 흐트러뜨릴 줄 아는 사람이 되고 싶습니다. 그래야 나와 세상 사이에 흐르는 힘을 발견할 수 있고, 그 힘을 새로운 '우리'의 중심으로 삼을 수 있을 것 같습니다.
저에게도 지금 이 경계 너머로 나아갈 수 있는 계기가 찾아오길 바라는 마음을 담아, 마지막으로 「빛과 실 」에 수록된 시의 일부를 옮겨봅니다.
내가 나일 뿐이라면
나는 너를 만날 수 없지
너가 너일 뿐이라면
너는 나를 만날 수 없어
나는 결코 나로서만 살고 있지 않아,
내가 느끼고 바라보는 모든 걸 나는 살아내니까
너는 결코 너로서만 살고 있지 않아,
너가 생각하고 사랑하는 모든 걸 너는 살아내니까
이상하지 않아?
한 번도 만난 적 없는 사람들이 우리를 두껍게 만든다 는 것
두렵지 않아?
결코 통과한 적 없는 시공간의 겹들이 우리를 무겁게 만든다는 것
우리는 우리 키와 체중에 갇혀 있지 않으니까
수십억 겹으로
부풀어 오르니까
수십억의 겹이
응축돼 단단해지니까
- 한강,『빛과 실』, 문학과지성사, p54-55, 「소리(들)」中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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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빛과 실』에서 가장 중요한 글은 아무래도 노벨문학상 수상 강연록입니다. 그러나 개인적으로 이 책에서 가장 좋았던 글은 책의 후반부에 해당하는 식물 집사 한강 작가님의 귀여운 정원 일기였습니다. 마음이 차분해지는 날, 고요하고 순수한 온기를 느끼고 싶다면 한 번 읽어보시길 추천드립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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지난 3월 25일, 한강 작가를 포함한 한국 문학인 414명이 윤석열 탄핵을 촉구하는 한줄 성명을 발표했었습니다. 용기 있고 단호한 작가 분들의 목소리가 한 줄 한 줄 담겨 있습니다. 우리 사회의 더 많은 사람들이 눈치 보지 않고 강인한 목소리를 낼 수 있길 바라며 PDF본을 다운받을 수 있는 링크를 공유합니다.
https://www.mindlenews.com/news/articleView.html?idxno=12634
한강 "파면, 보편 가치 지키는 일"…문학인들 '헌재 압박' - 세상을 바꾸는 시민언론 민들레
"훼손되지 말아야 할 생명, 자유, 평화의 가치를 믿습니다. 파면은 보편적 가치를 지키는 일입니다." 노벨문학상을 수상한 소설가 한강은 25일 국내 문학인 414명이 헌법재판소를 향해 내란 우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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